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/작중 행적 (문단 편집) === 결혼과 불치병 선고 === 신제국력 3년, 우주력 801년 1월 1일 1시, 라인하르트는 총본영에 모인 신하들에게 [[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]]를 황후로 맞이하겠다고 공표했다. 무수한 신하들이 호프 카이저린!(황후 만세!)을 외치며 환호했고, 그녀가 임신했으며 6월에 아이를 낳을 거라는 소식이 퍼지자 더더욱 환호했다. 국무상서 [[프란츠 폰 마린도르프]] 백작은 결혼 발표 이후 국무상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후임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국무상서 자리를 비워둘 수 없다며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. 그리고 키르히아이스의 죽음 이후 잠시 갈라섰던 [[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]] 백작부인도 [[오딘(은하영웅전설)|오딘]]을 떠나 [[페잔(은하영웅전설)|페잔]]에 와서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해주었다. 1월 29일, 두 사람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. 문무백관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나 [[파울 폰 오베르슈타인]] 원수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모습으로 [[하이네센]]에서 반정부 폭동이 발생했다고 라인하르트에게 보고했다. 사람들은 때와 장소도 못 가리는 오베르슈타인의 행태에 질타했지만 오베르슈타인은 의연하게 맞섰고, 라인하르트는 당분간은 [[하이네센]]에 체류하고 있는 [[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]] 상급대장에게 일임했지만 제독들에게 출정 준비를 태만히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. 그러나 하이네센의 폭동은 가라앉지 않고, 모든 사태를 배후조종한 [[아드리안 루빈스키]]의 마수는 페잔에까지 이르렀다. 결혼식 다음 날 밤 페잔 항로국에서 보관하던 항로 데이터가 모조리 삭제된 것이다. 라인하르트는 격분하여 항로국 장관을 질책하려고 했지만 오베르슈타인이 항로국 데이터를 군무성에 [[백업]]해 두었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. 신혼여행을 떠난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의 공을 칭찬하고 [[울리히 케슬러]] 상급대장에게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다. 그리고 케슬러는 이틀 뒤 범인을 체포하고 다섯 시간 동안 심문한 끝에 배후가 [[아드리안 루빈스키]]임을 밝혀냈다. 하지만 사태는 가라앉지 않고, 엉뚱하게 [[이제르론 공화정부]]와의 군사 충돌로 발전했다. 신제국력 3년 2월, [[이제르론 혁명군]] 함대와 제국군 [[바겐자일]] 함대, 바렌 함대가 충돌했다. 제국군은 혁명군의 전술에 두 번이나 말려들어 40만 명에 달하는 전사자를 냈고, 혁명군은 '카이저의 정강이를 걷어차 주고 왔다!'고 환호하며 열심히 선전했다. 구 동맹 시민들은 혁명군의 승리에 열광했고, 라인하르트는 친정을 선언했지만 다음 날 발열 증세 때문에 친정은 취소되었고 대신 오베르슈타인 원수가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하이네센에 가게 되었다. 그러나 오베르슈타인은 구 동맹의 명사들을 모조리 라그풀 교도소에 집어넣고 이들을 인질로 삼아 공화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강경한 술책을 썼고, 이는 거의 성공할 뻔 했지만 누군가의 공작으로 라그풀 교도소에 폭동이 발생하여 실패했다. 그 소식을 들은 라인하르트는 식겁해서 하이네센으로 직행했고 라그풀 교도소의 수감자들을 석방한 뒤, 자기 이름으로 이제르론에 초청장을 보냈다. 협상 자체는 잘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'신세기호' 문제로 양군이 교전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해 혁명군이 노이에란트를 침공하면서 [[시바 성역 회전]]이 벌어졌다. 라인하르트는 제독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다시 한 번 친정을 선언했다. 그러나 교전 도중 원인불명의 열병이 악화되어 기함 [[브륀힐트(은하영웅전설)|브륀힐트]]의 함교에서 혼절해버렸다. 분노한 제독들의 질타를 받은 어의들은 '변의성 극중 교원병(変異性劇症膠原病)'라고 진단했지만, 연구를 하지 않고서는 치료법을 알 수 없다고 대답하여 제독들을 분노케 했다. 깨어난 라인하르트는 [[볼프강 미터마이어]] 원수에게 병권을 위임하고 숙면을 취했다. 존경하는 황제가 쓰러졌다는 사실은 제국군 수뇌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. 이 사실을 적에게 알릴 수 없었기에 통신이 일부 봉쇄되었고,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혁명군을 확실히 끝낼 수 있음에도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뮐러 함대의 투입은 이루어지지 않아 뮐러는 뒤에서 밥이나 먹어야 했다. 비텐펠트는 혁명군을 끝장내기 위해 [[예비대]] 투입을 요청했지만 메크링거는 후퇴를 지시했고 그것 때문에 둘이 싸우기도 했다. 이러한 제국군의 불협화음 덕에 혁명군은 5:1이라는 전력차에도 버틸 수 있었다. 그리고 [[올리비에 포플랭]] 중령이 [[스파르타니안]]을 타고 공중전을 벌이다 '카이저 혼절'을 전하는 적의 통신을 감청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. 기함 [[율리시스(은하영웅전설)|율리시스]]에 모인 율리안 이하 간부들은 적 기함 브륀힐트에 올라타 황제와 담판을 벌이는 데 동의했다. 아무것도 모르는 비텐펠트는 후퇴하는 혁명군을 쫓았다가 무인함대에 낚여 시간을 허비했고, 제국군 선두부대는 아텐보로와 메르카츠의 유인책에 걸려들어 진형이 흐트러졌다. 그리고 그 사이 [[율리안 민츠]]와 [[로젠리터]] 연대가 탑승한 강습양륙함 이스트리아가 브륀힐트와 접현했고, 통로가 열리자 무수한 혁명군 장병들이 브륀힐트에 들이닥쳤다. 라인하르트는 들어온 적병 중 율리안 민츠의 모습을 확인하고 율리안이 아군을 뚫고 자신 앞까지 온다면 그의 용기를 인정하여 대등한 처지에서 요구를 수락할 수 있지만, 그렇지 못하다면 어떠한 요구도 할 자격이 없다고 미터마이어와 뮐러에게 지시했다. 브륀힐트에 침입한 혁명군은 제국군의 분단전술에 휘말려 위기에 처했지만, 로젠리터와 [[루이 마솅고]], [[올리비에 포플랭]]의 도움으로 율리안은 몇 번이나 적의 방어선을 뚫고 라인하르트 앞에 도달했다. 라인하르트는 율리안의 이름을 물었고 율리안은 라인하르트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"로엔그람 왕조가 병들었을 때 치료법을 알려주겠다"고 말한 뒤 기절했다.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율리안에게 군의관을 불러 준 뒤 전투를 중지시켰다. 이렇게 하여 혁명군과 제국군의 강화가 성립되었다. 이 때 페잔에서는 [[호랑가시나무관 습격사건]]이 벌어졌고, 무사히 [[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]]이 태어난다. 아이도 무사했고, 키르히아이스가 죽었을 때 사실상 이별을 고했던 안네로제와도 화해하게 됐으니 감개무량했을 듯. 아들의 이름은 벗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, 아들 이름 짓기 위해 고심하면서 수없이 종이를 구겨 던지는 장면이 상당히 개그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